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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가 몰랐던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동서지간[同壻之間]이었던 금천강씨 강빈과 덕수장씨 인선왕후

광명시가 도시로서의 기틀을 잡기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씨족으로 덕수장씨와 금천강씨를 살펴보았었다. 그런데 광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덕수장씨와 금천강씨를 살펴보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임금의 칭호를 받지 못한 두사람이 있는데 연산군과 광해군이다. 광해군이 어떤 정치를 펼쳤는지 모르겠지만 신하들이 기획한 인조반정에 의해 왕좌에서 내려오게 된다.

이어서 왕위에 오른 인조는 당시 막강한 위세를 떨치던 청나라의 침략으로 삼전도의 굴욕 등 왕은 되었지만 치욕스런 사건들을 많이 겪게 된다. 이후 병자호란의 결과로 인조의 맏아들이었던 소현세자와 동생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게 된다.

 

청나라로 끌려간 소현세자의 부인이 금천강씨 강빈, 봉림대군의 부인이 덕수장씨 인선왕후이다. 광명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강씨와 장씨 문중에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형제와 혼례를 올린 것이다.

 

민회빈 강씨는 1627(인조 5) 124일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1227일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와 가례를 올렸고, 인선왕후 장씨는 1631(인조 9) 913일 인조의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효종)과 가례를 올렸다.

 

물론 그 당시에 민회빈 강씨는 당시 기와집골(애기능 안쪽)에 거주하였던 반면 인선왕후 장씨는 경기도 안산군 마유면 응곡리 안골(현 시흥시 장곡동 안골마을)에 거주하였으니 광명출신이라 할 수는 없지만 강씨와 장씨가 형님,동서지간이 된 것이다.

 

광명을 대표하는 여성일 수도 있는 두사람은 같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심양에서 9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고초를 겪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자빈과 왕후가 된 것이다.

 

민회빈 강씨는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기초로 하는 남성 중심의 폐쇄된 사회 환경 속에서 자라났지만 생소한 타국 땅에서 조선 여인의 우수한 생활 능력을 발휘한 여장부였다. 조선의 지원이 끊기자 세자빈이라는 고귀한 신분을 던지고 과감히 경제 전선에 뛰어들어 농업과 무역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외교창구로서의 기능을 하였으며 수많은 조선인 포로들이 속환하여 그리던 고향으로 되돌려보내는 등 애민사상으로 무장한 조선 최초의 여성 CEO였다.

 

인조의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효종)과 가례를 올리고 풍안부부인(豊安府夫人)이었던 장씨는 1645(인조 23) 소현세자가 급서하자 인조의 명에 의해 봉림대군이 세자로 책봉되면서 장씨 또한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1649년 인조가 승하하고 효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인자한 성품의 소유자였다고 알려진 인선왕후는 딸들과 한글로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주격조사 ''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이 바로 인선왕후의 어필이다. 그 이전의 문헌들은 주격조사를 모두 이, , 로 썼다. 또 효종 못지않은 북벌론 지지자였던 인선왕후는 효종과 더불어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굿판을 근절하고 금주령을 내리는 한편 이불의 색을 적색과 청색의 2가지 색으로 통일하여 전시에 군복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으며 이렇게 준비된 재원은 모두 북벌 계획에 사용되었다.

 

선조 26(1593) 행주대첩시 권율 장군 휘하에서 용전분투(勇戰奮鬪)하다 전사한 충의공 장응기(張鷹箕)의 영정을 그의 아들 장준(張晙)이 행주에서 철산으로 옮겨 오면서 광명에 뿌리를 내린 덕수장씨!

인조24년인 1646년 인조독살 사건에 연루되어 역적으로 몰려 일가족이 몰살되는 비극을 겪게되지만 가까스로 멸문지화를 면하고, 70년이 지난 1718(숙종 44)에 이르러 강빈이 민회빈(愍懷嬪)으로 복위되면서 피신하였던 충청도 광천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능말(능의 끝쪽)이라고 불리는 아방리에 터를 잡은 금천강씨!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민회빈 강씨가 왕후가 되었을텐데 소현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봉림대군이 왕이 되어 왕후가 된 인선왕후!

 

광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금천강씨와 덕수장씨의 두집안에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라는 인조의 두아들과 혼례를 올렸다는 역사속의 사실들이 우리를 흥미롭게 한다.

 

광명이라는 지역사회에서 왕실 사람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외국을 경험한 민회빈 강씨와 인선왕후를 같이 조명해보는 것도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재미있고 유익한 역사적 소재일 것 같다.

 

한사람은 조선 최초의 여성 CEO로서 애민사상에 투철한 여인이었으며 한사람은 한글을 사랑하고 약소국의 서러움을 뛰어넘고자 여인으로서 북벌을 주장하고 준비했던 당찬 여인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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